Intertextuality is the shaping of
texts' meanings by other texts.
It can refer to an author’s borrowing
and transformation of a prior text or
to a reader’s referencing of one text
in reading another.
상호텍스트성이란 용어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에 의해 1966년 처음으로 소개된 것으로, 용어 자체가 폭넓은 차원의 개념 폭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의 의미로 정의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크리스테바가 처음에 이 용어를 만들어낸 계기는 그 동안 텍스트 비평의 주류에 놓여 있던 작가주의 분석에 치중한 역사주의(historicism)에 대한 대안 모색에서 비롯되었다. 텍스트 비평에 대한 역사주의 접근 방식의 초점은 텍스트로부터 작가가 글을 쓰면서 추구한 목적, 작가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의 근원적 뿌리, 그리고 당시의 사람들의 반응(response)에 대한 고찰이었다. 이러한 작가의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요소에 대한 강조와 작가가 삶을 꾸려나간 사회적 상황에 대한 강박관념적 고려에서 파생되는 딜레마는 텍스트를 오직 작가의 생산물로만 귀결시키는 것이었다(Morgan, 1985, p. 1). 이것은 결국 텍스트와 그것을 읽고 보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텍스트와 다른 텍스트 간의 관계에 대한 고려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게끔 만들었다. 크리스테바는 이러한 맹점을 지적하면서 바흐친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상호텍스트성의 의미를 주창한다. 바흐친의 논의를 바탕으로 크리스테바는 엄밀하게 말하면 모든 텍스트는 인용의 모자이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텍스트의 흡수이자 변형임을 강조한다(Kristeva, 1986, p. 237). 텍스트의 구성은 3차원적, 즉 글을 쓰는 주체, 그 글을 읽는 객체, 그리고 외부적 텍스트의 상호 관련성을 통해 완결되기 때문에 텍스트의 지위는 이러한 주체-객체-맥락의 3차원 속에서 대화적 요소로서 기능하게 된다. 따라서 텍스트의 지위는 글쓰는 주체와 그 글을 접하는 객체에게 모두 속한다는 의미에서 수평적인 축을 갖는 동시에 해당 텍스트 자체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텍스트와 융합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수직적인 축을 갖는다. 수평축과 수직축의 양가적 공간을 갖는 텍스트의 지위는 3차원적 요소를 매개하는 위상(the status of mediator)을 갖기 때문에 결국 텍스트의 이해가 작가로부터 부여된 어떤 것을 찾는 행위가 아니며, 텍스트의 의미는 그 누군가에 의해 고정된 것으로 주어질 수 없게 된다. 기존의 연구 전통에서 철옹성에 놓여 있던 신적 지위를 가진 작가주의 이론과 의미 자체의 고정성 등은 폐기되어야 할 요소로 간주된다. 텍스트의 양가적 공간은 텍스트의 이해가 작가가 아닌 객체로부터 완결성을 갖게 됨을 주창하는 것이며, 또한 사회적 맥락이 텍스트로 삽입되며 그 텍스트가 다시 사회적 맥락 속으로 재환치되는 과정을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바흐친의 3차원적 요소 간의 대화주의에 입각한 상호텍스트성의 개념을 차용하면서 크리스테바는 텍스트의 이해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바르트 또한 1968년에 작성한 《작가의 죽음》이란 에세이에서 크리스테바의 논의와 유사한 방식의 논의를 전개하면서 텍스트는 신의 계시와 같은 하나의 의미(a single theological meaning)를 창출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Barthes, 1981, p. 211). 텍스트는 다양한 문화적 환경으로부터 가져온 인용의 복합체이며, 이전에 존재하던 수많은 텍스트들이 함께 부딪치고 뒤섞이는 망(web)으로서의 공간이기 때문에 독창적인 텍스트란 존재하지 않는다. 독창적인 텍스트의 부재가 의미하는 것은 그 텍스트를 만든 주체로서 작가의 역할이 텍스트가 갖게 되는 사회적 맥락과의 소통과 이전의 텍스트와의 교류로부터 만들어진 원재료를 손질하는 인물로 축소됨을 의미한다. 상호텍스트성에 대한 바흐친, 바르트, 그리고 크리스테바의 논의가 제공하는 의미는 텍스트의 이해를 둘러싼 다층적 구조를 드러냈다는 점에 있다. 텍스트의 구성 자체가 이전에 존재하던 다른 텍스트와의 교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 텍스트는 그것이 생산된 사회적 맥락과의 접점으로 작용한다는 점, 그리고 텍스트의 이해는 궁극적으로 주체인 작가와 객체인 독자와의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대화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 대한 설명은 단순히 텍스트를 작가의 부산물로 파악하여 작가의 정신을 텍스트로부터 찾아내려고 하는 비평적 관점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대신 텍스트의 이해는 항상 변화의 과정으로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텍스트의 의미는 항상 일시적이다. 특정한 텍스트로부터 가져진 의미가 개인에게 영속적으로 지속될 것이란 전제는 텍스트의 의미가 고정적이라는 판단과 사람들이 가지는 인식망의 변화에 대한 무지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특정 텍스트의 이해와 관련된 경험과 정보가 개인들에게 추가적으로 제공할 때 사람들은 새로운 인지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며, 이러한 과정 자체에서 수정 과정은 쉽게 주어진다. 이는 같은 텍스트에 대한 반복적 접촉에서 잘 드러난다. 예전에 접했던 책이나 텔레비전 드라마 혹은 영화를 다시 읽거나 시청할 때 사람들이 그 이전에 가졌던 것과 다른 느낌을 가지는 것은, 특정 텍스트에 대한 이해 자체가 영속적이지 않음을 잘 드러내는 행위이다. 사회적 상황과 개인적 경험이 변한다는 것은 그 변화가 같은 텍스트와 다른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텍스트 홀로 의미를 창출하는 완결체의 모습을 띤다는 전제는 불가능하다(Marlow, 1997, p. 131). 그 이유는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작가 또한 다른 텍스트의 독자로서의 역할을 갖는다는 것이며, 독자는 특정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그 텍스트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내재된 경험과 지식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적 상황에서 주어지는 의미 덩어리들을 같이 동원해서 이룬다는 점에 있다. 가장 기본적 형태로 주어지는 상호텍스트성의 개념적 이해는 ‘이야기로 구성된 텍스트 간의 교류’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은 텍스트가 의미화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이야기의 구성 방식이 내러티브 차원이든 시각적 차원의 어떤 형태이든 간에 사람들에게 의미로의 해독 과정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호텍스트성의 파악은 우선 하나의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로부터 가져온 다양한 참고물을 포함한 상태에서 비롯될 수 있다.
출처: 사이버방송영상정보센터
박승현 (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
texts' meanings by other texts.
It can refer to an author’s borrowing
and transformation of a prior text 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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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텍스트성이란 용어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에 의해 1966년 처음으로 소개된 것으로, 용어 자체가 폭넓은 차원의 개념 폭을 가지고 있기에 하나의 의미로 정의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크리스테바가 처음에 이 용어를 만들어낸 계기는 그 동안 텍스트 비평의 주류에 놓여 있던 작가주의 분석에 치중한 역사주의(historicism)에 대한 대안 모색에서 비롯되었다. 텍스트 비평에 대한 역사주의 접근 방식의 초점은 텍스트로부터 작가가 글을 쓰면서 추구한 목적, 작가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의 근원적 뿌리, 그리고 당시의 사람들의 반응(response)에 대한 고찰이었다. 이러한 작가의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요소에 대한 강조와 작가가 삶을 꾸려나간 사회적 상황에 대한 강박관념적 고려에서 파생되는 딜레마는 텍스트를 오직 작가의 생산물로만 귀결시키는 것이었다(Morgan, 1985, p. 1). 이것은 결국 텍스트와 그것을 읽고 보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텍스트와 다른 텍스트 간의 관계에 대한 고려를 차단하는 역할을 하게끔 만들었다. 크리스테바는 이러한 맹점을 지적하면서 바흐친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상호텍스트성의 의미를 주창한다. 바흐친의 논의를 바탕으로 크리스테바는 엄밀하게 말하면 모든 텍스트는 인용의 모자이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른 텍스트의 흡수이자 변형임을 강조한다(Kristeva, 1986, p. 237). 텍스트의 구성은 3차원적, 즉 글을 쓰는 주체, 그 글을 읽는 객체, 그리고 외부적 텍스트의 상호 관련성을 통해 완결되기 때문에 텍스트의 지위는 이러한 주체-객체-맥락의 3차원 속에서 대화적 요소로서 기능하게 된다. 따라서 텍스트의 지위는 글쓰는 주체와 그 글을 접하는 객체에게 모두 속한다는 의미에서 수평적인 축을 갖는 동시에 해당 텍스트 자체는 그 이전에 존재했던 텍스트와 융합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수직적인 축을 갖는다. 수평축과 수직축의 양가적 공간을 갖는 텍스트의 지위는 3차원적 요소를 매개하는 위상(the status of mediator)을 갖기 때문에 결국 텍스트의 이해가 작가로부터 부여된 어떤 것을 찾는 행위가 아니며, 텍스트의 의미는 그 누군가에 의해 고정된 것으로 주어질 수 없게 된다. 기존의 연구 전통에서 철옹성에 놓여 있던 신적 지위를 가진 작가주의 이론과 의미 자체의 고정성 등은 폐기되어야 할 요소로 간주된다. 텍스트의 양가적 공간은 텍스트의 이해가 작가가 아닌 객체로부터 완결성을 갖게 됨을 주창하는 것이며, 또한 사회적 맥락이 텍스트로 삽입되며 그 텍스트가 다시 사회적 맥락 속으로 재환치되는 과정을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바흐친의 3차원적 요소 간의 대화주의에 입각한 상호텍스트성의 개념을 차용하면서 크리스테바는 텍스트의 이해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바르트 또한 1968년에 작성한 《작가의 죽음》이란 에세이에서 크리스테바의 논의와 유사한 방식의 논의를 전개하면서 텍스트는 신의 계시와 같은 하나의 의미(a single theological meaning)를 창출하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Barthes, 1981, p. 211). 텍스트는 다양한 문화적 환경으로부터 가져온 인용의 복합체이며, 이전에 존재하던 수많은 텍스트들이 함께 부딪치고 뒤섞이는 망(web)으로서의 공간이기 때문에 독창적인 텍스트란 존재하지 않는다. 독창적인 텍스트의 부재가 의미하는 것은 그 텍스트를 만든 주체로서 작가의 역할이 텍스트가 갖게 되는 사회적 맥락과의 소통과 이전의 텍스트와의 교류로부터 만들어진 원재료를 손질하는 인물로 축소됨을 의미한다. 상호텍스트성에 대한 바흐친, 바르트, 그리고 크리스테바의 논의가 제공하는 의미는 텍스트의 이해를 둘러싼 다층적 구조를 드러냈다는 점에 있다. 텍스트의 구성 자체가 이전에 존재하던 다른 텍스트와의 교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 텍스트는 그것이 생산된 사회적 맥락과의 접점으로 작용한다는 점, 그리고 텍스트의 이해는 궁극적으로 주체인 작가와 객체인 독자와의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와 독자 사이의 대화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 대한 설명은 단순히 텍스트를 작가의 부산물로 파악하여 작가의 정신을 텍스트로부터 찾아내려고 하는 비평적 관점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대신 텍스트의 이해는 항상 변화의 과정으로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텍스트의 의미는 항상 일시적이다. 특정한 텍스트로부터 가져진 의미가 개인에게 영속적으로 지속될 것이란 전제는 텍스트의 의미가 고정적이라는 판단과 사람들이 가지는 인식망의 변화에 대한 무지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특정 텍스트의 이해와 관련된 경험과 정보가 개인들에게 추가적으로 제공할 때 사람들은 새로운 인지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며, 이러한 과정 자체에서 수정 과정은 쉽게 주어진다. 이는 같은 텍스트에 대한 반복적 접촉에서 잘 드러난다. 예전에 접했던 책이나 텔레비전 드라마 혹은 영화를 다시 읽거나 시청할 때 사람들이 그 이전에 가졌던 것과 다른 느낌을 가지는 것은, 특정 텍스트에 대한 이해 자체가 영속적이지 않음을 잘 드러내는 행위이다. 사회적 상황과 개인적 경험이 변한다는 것은 그 변화가 같은 텍스트와 다른 대화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텍스트 홀로 의미를 창출하는 완결체의 모습을 띤다는 전제는 불가능하다(Marlow, 1997, p. 131). 그 이유는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작가 또한 다른 텍스트의 독자로서의 역할을 갖는다는 것이며, 독자는 특정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그 텍스트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내재된 경험과 지식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적 상황에서 주어지는 의미 덩어리들을 같이 동원해서 이룬다는 점에 있다. 가장 기본적 형태로 주어지는 상호텍스트성의 개념적 이해는 ‘이야기로 구성된 텍스트 간의 교류’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은 텍스트가 의미화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이야기의 구성 방식이 내러티브 차원이든 시각적 차원의 어떤 형태이든 간에 사람들에게 의미로의 해독 과정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호텍스트성의 파악은 우선 하나의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로부터 가져온 다양한 참고물을 포함한 상태에서 비롯될 수 있다.
출처: 사이버방송영상정보센터
박승현 (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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