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2 Interview

from essay 2010/03/12 22:08
이달의 디자이너
2010/03/12 22:08 2010/03/12 22:08
일본 호감 한국 무시 열받아요
서구인들이 한국사람보다 일본사람을 선호한다? 인종을 차별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한국사람이 다른 나라의 국민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한국사람도 어느 국가와 인종을 선호(차별)한다. 한국사람도 유럽 백인과 동남아 사람 중에 유럽의 백인을 선호할 것이다. 비교가 너무 비약적인가? 그럼 동양인끼리 비교하면 어떨까. 젊은 세대에게는 중국사람과 동남아사람보다는 일본사람을 더 좋아할 것이다. 종교인, 인권위원 단체, 만민은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도덕적인 자유 평화주의자를 제외한 대다수 사람은 겉으로는 내색을 안 하더라도 선진국의 문화와 그 나라 사람을 선호할 것이다.

어느 사회 또는 집단이건 힘의 논리에 의해서 우,열이 나뉘게 마련이다. 국제사회에서 그 힘의 기준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21세기에는 경제력이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경제활동만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경제 발전은 문화와 예술의 부흥이 자연적으로 뒤따르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제력은 세계 2위이다. 일본의 경제 붕괴설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지만 사실상 일본은 지난 10년간의 경제 불황을 극복하고 지금은 경제 부활의 위치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중국과 인도가 거대한 대륙과 인구수에 힘입어 일본을 앞서긴 하겠지만, 50년 후에도 일본의 경제력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서구인들의 눈에는 일본은 그리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일본은 서구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 전적을 가지고 있다. 1900년대 초 만주 패권을 빌미로 러시아를 침략한 일본은 이를 승리로 이끌었다. 메이지 유신 때 서구 문호 개방을 통해 일본의 산업발전과 군대는 절대 서구에 지지 않았다. 러시아를 이긴 일본에 유럽 열강은 일본의 제국주의를 암묵적으로 승인하였다. 즉, 그 당시 서구인에게 일본은 단순히 동양에 있는 힘없는 약소국중에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지금의 일본에 대한 세계의 막강한 인지도는 세계를 재패하리라 생각했던 일본인의 야욕에서 나왔던 일본의 국력이라고 이야기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예전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진중권 교수와 지만원 박사가 한일문제를 놓고 논쟁을 한 기억이 난다. 당시 지만원 박사의 발언은 자극적이었다. "한국은 일본에 먹힐 만하니까 먹혔다". 이성을 잃은 감정이 섞인 발언이다. 보수 우익의 이념적 목소리가 짙기 때문에 전혀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대항할 상황이 아니었기에 통치권을 일본에 넘겨줘야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당시 제국주의 패권 다툼에서 식민통치는 암묵적으로 용인되어 있었다. 물론, 일본의 식민통치기간 동안 한국사람에게 저질렀던 야만적인 행위는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 기간이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도왔다는 점에서, 많은 학자가 제국주의의 군사적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부정하지만, 이도 사실이다. 한국이 이처럼 경제발전을 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부지런한 근성과 높은 저축률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본의 식민통치기간 동안의 (일본의 침략전쟁을 위한) 산업화와 제국주의 전쟁의 종전 후 냉전시대 미국의 원조도 큰 몫을 하였다.
일본은 산업화 이후부터 지금까지 아시아의 주인공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외국인들(특히 서구 유럽과 미국)에게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 주인공을 기억하는 것이다. 지금은 자유와 평화가 보장된 듯하지만, 세계의 역사는 민족과 국가 간의 침략서사극이다. 아시아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이 없는 외국인이라면 한국은 너무나 쉽사리 외면당하기 일쑤다.
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이라면, 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무심함을 절실히 느꼈을 것이다. 위의 기사처럼 무시당하는 기분마저 들 때도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론, 차별적인 시선을 보낸 그 외국인의 행동은 옳지 못하다. 인종차별은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 금기시됐고, 민족주의 또한 세계 2차대전의 종식 후 그 허구성에 대해 많은 학자가 논의를 펴고 있다.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에 따라 자유민주주의는 발전했지만, 인간의 본능적이고 비이성적인 사고는 언제나 선민사상에 따른 우월성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러한 선민사상은 항상 민족주의를 수반하기에 지식인들은 그 허구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통치에 있어서 민족주의는 국민을 쉽게 단합하는 힘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정치인에게 달콤한 마약과도 같다.

유럽인들의 민족주의를 정당화시키려는 노력이 결국 파국으로 닿는 하나의 예는 독일 나치의 파시즘이다. 당시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 국민에게는 자신들을 지켜줄 행복한 삶을 약속해 줄 수 있는 새로운 세계에 목말라 있었다.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자유민주주의는 산업화의 영향으로 양극화가 심해져 실업자의 수가 급증해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았으며, 그 당시 대두하기 시작되었던 사회주의는 독일의 부유층의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었다. 이때 전후 혼란에 빠진 국민에게는 나치가 내세운 인종주위와 민족주의가 희망으로 비춰졌다. 어렸을 때부터 인종학에 관심이 많은 히틀러에게는 다윈의 사회 진화론을 바탕으로 게르만족만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우등한 민족이라는 주장을 내세운다. 호소력 짙은 히틀러의 연설에 우매한 국민은 아낌없이 그를 지지해 주었다. 히틀러가 그토록 증오하였던 유대인들은 망명을 가거나 무자비하게 학살을 당했다. 독일 국민과 히틀러는 게르만족의 세계정복을 믿고 있었지만, 미국의 도움으로 연합군의 승리는 독일 나치의 꿈을 날려버렸다. 패전 후 민족주의, 인종주의는 지지하는 목소리는 거의 사라졌으나 지금도 어두운 그늘 속에서 잠식해 있을 뿐이다. 지금도 수많은 분쟁은 민족주의 사상에서 출발하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 또한 한족의 후예를 강조하며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람들 기억 속에 민족주의를 내세운 파시즘이 악몽과 같을지 몰라도 아직도 많은 정치인은 마약의 중독성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달콤한 꿈을 그리워한다. 민족주의의 파국을 경험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 죽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국은 좀 특이하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사망선고를 내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왜냐하면, 남북통일의 숙제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의 민족주의에 대한 견해는 상당히 추상적이고 복잡하다. (정말 복잡해서 다음에 정리와 생각을 더 해봐야겠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이 생각난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우리도 유럽처럼 집단 안보체제를 수립하고 서로 상생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세계화 시대의 제국주의의 악령이 되살아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감정적 대립과 민족 간의 인종 간의 우월의식은 역사 속 과거의 상처를 들추어내어 파국으로 치닫는 지름길이다. 과거는 객관적인 사실만 남겨놓고 왜곡되어서도 오도되어서도 안된다. 비이성적이고 감정적 대립은 객관성을 잃어버리고, 감정이 이끄는 주관적 해석이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해 버린다. 우리는 역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물론 외국인의 한국을 바라보는 태도를 보고, '한국을 무시한다' 또는 '일본을 더 좋아하네'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감정적 흥분으로 적대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거침없이 후진국의 국민을 무시하는 외국인도 상당히 많다. 그들의 태도는 분명히 정당화될 수는 없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모멸감과 멸시를 받는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지만, 감정적 대립으로 이끌어 나갈 때,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꼬이기 마련이다. 모멸감에서 나온 반감에 이끌려, 한국사람으로서 화가 날 수도 있지만, 감정적 대응으로 그 순간에 모멸감을 씻을 수는 있겠지만, 결국에는 "유치한 싸움"이 될 뿐이다. 가끔 TV토론을 보면, 논리적으로 시작한 토론이 나중에는 감정대립으로 변질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있다. 국가 운영에 책임이 있는 국회의원과 영향력 있는 지식인들의 "유치한" 대립을 볼 때마다, 그들의 권위와 지식은 감정대립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있다.

이글이 상당히 친일적이라는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실은 외국인이 생각하는 일본은 안타깝게도 한국인이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독도문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보상, 친일파 청산 등 일본과 실랑이를 오랫동안 해온 한국으로서는 당사자로 반일 감정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일본의 대중문화를 섭취하고, 일본의 제품을 이용해왔던 외국인에게는 에니메이션의 천국,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잘 만드는 나라로만 인식할 뿐, 식민시대에 한국인에게 가했던 학대, 인권유린, 수탈 등을 기억하는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의 젊은이들 또한 한국과 큰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발생한 난징 대학살 사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이렇듯, 자국과 관련이 없는 내용을 이슈화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진보적인 역사학자가 한종의 역사교과서만 볼 것이 아니라, 여러 권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어느 역사책이든 작자의 주관적 개입은 불가피하지만, 관점이 다른 여러 책을 읽음으로써 주관적 해석은 희석되고 객관화될 수가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세계의 역사와 우리 사회는 진실과 정의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다른 사람의 말을 쉽게 믿는 사람을 보고 귀가 얇다고 한다. 어쩌면 두꺼운 귀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호도, 선동, 침소봉대, 요즘 한국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 진실과 정의는 언제나 권력과 집단의 이익을 위해 뒷전으로 밀려나거나, 그들의 입맛에 맞게 변질하곤 한다. 우리는 좀 더 이 사회와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하고, 다양한 관점과 해석의 가능성을 열고, 두꺼운 귀로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2009/07/15 10:57 2009/07/15 10:57

0616 덧없음

from essay 2009/06/17 06:18
삶과 죽음사이에 놓여있는 순간의 경계선
2009/06/17 06:18 2009/06/17 06:18
01 항상 웃으며 친절하게 인사해라
02 절대 나약한 모습을 상대에게 보이지 마라
03 겸손하지 말라
04 뒤끝을 남기지 마라
05 나보다 뒤떨어진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무시하라
06 똑똑한 레즈비언이 되려면 강인한 자신감으로 상대를 제압해라
07 다음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줘라
08 감성을 죽이고 논리적이고 해박한 척해라
09 힘을 얻게 되면 200% 활용해라
10 어떻게 타인을 내 맘대로 조종할 수 있을지 고민하라
11 자신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망각하지 마라
12 상대의 입장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라
2009/02/08 13:06 2009/02/08 13:06
사람들은 모방을 즐긴다. 이는 단순히 영화, 음악, 미술, 디자인과 같은 창작활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문화생활 전반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카이유와(Caillois)는 <놀이와 인간, Les Jeux at Les Hommes, 1958>이라는 책에서 놀이의 개념을 기본적으로 네 가지 종류로 분석하였다. 경쟁놀이(스포츠), 주사위 놀이(운을 따르는 놀이), 흉내 내기 놀이, 자기 편집적 놀이(무엇인가에 미치도록 몰두하는 놀이). 그중 하나인 '미미크리(mimicry)'라는 흉내 내기 놀이는 무엇인가를 모방하거나 그대로 베끼면서 노는 것이다. 그는 이 놀이가 인간의 사회적 본능을 개발하는 데 가장 원초적인 자극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자아이의 소꿉장난, 남자아이의 군인 놀이와 경찰 놀이,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선생님 행동∙표정∙말투 따라하기나 칠판의 손 글씨 베끼기, 성대모사∙모창, 유럽∙미국과 일본의 의회나 교통 시스템 모방 등 예를 들자면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방은 문학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모든 텍스트가 작가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인용의 복합체라는 '상호텍스트성 (Intertextuality)'이라는 용어가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에 의해 1966년 처음 소개되었다. 이는 순수한 독창성의 불가성과 내용의 고갈을 의미하며 기존의 텍스트를 그대로 흡수 또는 작가에 의해 다른 기호체계로 바뀌는 변형을 통한 인용의 모자이크를 의미한다. 포스트모던 작가들에게 패러디는 다양성을 추구하고, 획일화된 기존 텍스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배적 관점으로 인식되어 "텍스트의 도둑질"을 교묘하게 해왔던 것이다. 인용한 텍스트는 작품의 문맥 안에서 재해석되어 새로운 옷을 입은 각색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때로는 차용의 과정에서 같은 텍스트가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 이는 "교묘한 도둑질"이라기 보다도 새로운 영감의 동기가 되어 자의적, 주관적 해석으로 받아들여 질 수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심리학용어인 '맥락 효과(Context Effect)'에서 설명될 수가 있는데 맥락효과란 같은 이미지와 단어가 맥락(심리학에서는 선험 지식과 인식)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되는 효과이다. 예를 들면 2개의 권총이미지를 생각해보자. 하나는 어두운 밤 골목에서 흐릿한 가로등 빛에 보이는 누군가가 든 권총의 이미지, 다른 하나는 은행에서 입구 앞에 서 있는 권총을 찬 경찰관의 이미지. 이 두개의 이미지를 비교해 보았을 때, 같은 권총이라도 문맥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이미지와 텍스트라는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으며, 문맥 안에서 이해되고 설명된다. 크게는 국가의 문화와 사회 시스템 속에서 작게는 개개인의 경험과 직관에 의해 인식되는 과정에서 본래의 원형은 조금씩 변질되고 왜곡이 되고 콜라주와 모자이크의 형식을 빌려 "새로운" 결과를 낳게 된다. 즉, 복제와 모방의 단계에서 자의적 해석을 통한 기존 컨텍스트와 충돌과 화해의 과정에서 '조합'과 '혼성'의 양태를 지니게 된다. 다시 말해 이 과정에서 이질적인 두 요소가 융해되어 새로운 형태를 창출하기도 하지만, 그 파편과 부분을 가져와 조합하는 콜라주의 형식을 나타내기도 한다.

유형학 사진에서도 모방과 유사성을 엿볼 수 있다. 유형학은 과학, 인류학과 건축학에서 많이 사용되는 개념이었으나 갈수록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어 예술가들에게도 그 개념이 일반화되었다. 사진가도 유사성 찾기를 시작하였다. 1960년대 베른트와 힐라 베혀(Bernd & Hilla Becher)의 건축물 촬영을 시작으로 여러 사진작가가 다양한 소재의 유사성을 찾아 촬영을 시작하였고 그들만의 아카이브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들이 주목한 것은 독립적 디테일한 사진과는 달리 독자의 관심은 작가의 유사성 누적의 방식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학 사진들을 계기로 유형학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해지고 있다. 유사성의 기준이 가시적 시각성에서 은유적 텍스트로 전이된 점과 자체적으로 연출에 의해 그 기준을 만든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2008/08/13 07:54 2008/08/13 07:54